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버추어 파이터 3 (문단 편집) == 한국의 상황 == 그래픽이 엄청난 만큼 일본에서도 초기 가격이 300~500만엔일 정도로 기판 가격이 굉장히 비싸 보급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는 상당히 어려웠다.[* 그런데 버추어 파이터 2의 한국 가격은 버추어 파이터 3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. 어떻게 보자면 버추어 파이터 3가 1996년 타 게임은 범접조차 못할 엄청난 그래픽 수준에도 불구하고 버추어 파이터 2만큼의 충격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던 셈이다.] 당시 중형차 두세대 값으로 영세한 오락실에서 그런 기계를 들여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. 그래서 도입 당시엔 플레이 가격이 대부분 300원이었다. 현재를 기준으로 해도 적은 돈은 아닌 마당에 이 게임이 한국에 발매된 것은 1997년 봄이라는 점에서 체감 가격은 현재보다 더욱 높았다. 지방으로 말하자면 군 지역은 물론 간신히 시 이름을 달고 있는 소도시는 도시에 하나도 없을 수 있었고, 중소 도시쯤 되어야 시내 오락실에 하나쯤 있을까 했다.[* 중소 도시라도 버추어 파이터 3가 몇 개씩 도입된 도시가 있기도 하다. 결국 이런 것은 오락실 사장의 운영 의지나 손님층의 선호도도 많이 달렸기 때문이다. PC방 초기 시절에는 지역마다 선호 게임이 다르기도 했다.][* 그리고 몇달 뒤 [[철권 3]]가 출시되었는데 일부 오락실을 제외하고 거의다 [[철권 3]]로 바뀌었다.] 게임의 흐름은 대시 거리가 짧아진 것을 속도가 떨어진다고 느낀 사람이 많았던 탓인데 한국에서는 팀 배틀이 활성화된 곳 말고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다. 때문에 오히려 2편으로 회귀하는 유저가 많았다.[* 실제로는 프레임 자체가 확 느려지거나 그런 문제는 없었고 모션과 속도 조절이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. 그리고 대시의 경우는 캔슬 대시로 중급자 이상은 날라다닐 수 있었지만 이건 동네 오락실에 모든 플레이어가 웨이브 대시로 다가가 초풍으로 똥침 넣는 세상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다.] 다만 2편 시절의 최상위 괴수들은 3편으로 전환하였고 2편에 이어서 세계 최강의 수준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었지만 신규 유입 유저가 없었다는 점과 게임 난이도가 타 게임에 비해 높았던지라 결국 한국에서 버추어 파이터가 몰락하는데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. 게다가 신규 유저 뿐만이 아니라 기존 2편의 유저들 중에서도 3에 실망해 이탈한 유저도 많았다. 일례로 3 발매 직전까지도 2의 고수가 바글대고 끊임없는 플레이가 이루어지던 준 성지급 오락실들에서도 당연히 인기 열풍을 이을 것으로 예상한 오락실 업주가 3편을 입하했으나 즉시 파리만 날렸던 걸 보면 2편의 유저에서 많은 수가 즉시 외면하고 이탈했음을 알 수 있다. 그리하여 3편은 수입사의 부도까지 불러오는 원인이 되었고 오락실 업주들에게도 큰 손해를 안겼으며 한국에서는 손에 꼽히는 몇 개의 오락실에만 소수의 유저가 모여 팀 배틀을 꾸려나갔다. 게다가 같은 시기 [[철권 3]]가 대히트를 치면서 유저들이 그쪽으로 이탈한 영향도 있다. 철권 3 외에도 더 킹 오브 파이터즈 '96,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, 사무라이 쇼다운 4 등도 인기가 있었다. 그리고 바람의 나라가 1996년 출시되면서 PC방과 온라인 게임의 서막이 시작되기도 하였다. 그리고 원래 RTS 장르들도 한국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었는데 특히 버추어 파이터 3 후반부에는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기도 했다. 이런 게임들이 버추어 파이터보다 신규 유저들을 쭉 끌어갔던 것이다. 하지만 이들이 발전시킨 팀 배틀 문화는 3편에서 완벽하게 정착되어 타 게임의 유저에게도 정착되기 시작하였고 여기에 한국 최초의 전국 단위 팀 배틀이었던 '메가 배틀'[* 서울 서초구 양재동 메가존에서 열렸으며 만화 선녀강림의 작가이자 날아라 슈퍼보드 환상서유기의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유현이 대회 로고 및 일러스트를 맡았다.]을 주최하여 배틀 문화의 기점이 되었다. 특히 PC통신을 기반으로 하여 전국 각지의 고수들이 연결되면서 '지역 버추어 파이터'를 고수하던 환경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폭넓은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 강한 한국세의 원동력이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